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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아픔이 있는 섬 실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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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실미도는 인천광역시 중구 무의동에 딸린 무인도로 면적 0.26km2  

 

해안선길이 6km  해발 약 80m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20km 정도 떨어져 있다.




인천 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 바로 앞의 잠진도 항에서 차도선을 타고 10분 정도 가면 대무의도에 

이르는데 이곳의 서쪽에 위치


실미도는 수도권의 관광객이 즐겨 찾는 곳

영종도가 국제공항으로 개발되기 전에는 인천 연안여객선 터미널에서 여객선을 타고 들어와야했다.


그 당시는 교통이 불편해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 많지 않았으나 이제는 교통이 편리해져 수도권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손쉽게 이곳을 갈 수 있다.


(영화) 실미도와 드라마 천국의계단 촬영지로

잘 알려진 서해안의 실미도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섬



실미도 사건 

인천 실미도 사건의 주인공인 684부대 북파공작원 24명은 북한침투작전을 위해 

창설된 특수 부대 대원들이었다.


1971년 부대에서 18명을 살해하고 실미도를 탈출해 인천 독배부리 해안에 상륙한 다음 버스를 탈취해

청와대로 향하다가 군경과 교전을 벌이던 중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


그자리에서 20명은 즉사하고 4명만이 살아남았다.

하지만 생존자 4명도 이듬해인 1972년 3월10일 사형선고를 받고 서둘러 사형이 집행


이런 참담한 사건이 일어났으나 정부의 언론 통제로 사건은 보도되지 못하고 30년가까이 역사에 묻혀버렸다 

그동안 정부는 이 사건을 실미도 난동사건으로만 발표하고 철저한 비밀에 붙였었다


오랜 동안 소문으로만 떠돌았던 이 사건의 실체가 백동호의 소설 (실미도)와 강우석 감독의 영화

(실미도)를 통해서 세상에 알려졌다.


북한침투를 위한 특수부대를 창설하게 된 배경에는 북한의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있다.

1968년 북한의 무장공비 김신조 일당들은 청와대를 습격하여 대통령을 사해할 목적


그들은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했고 우리 군경과의 치열한 전투 끝에 30명이 사살되었고 김신조는 생포


이 사건의 계기로 정부는 1968년 4월1일 중앙정부의 지시로 684특공대 오소리공작대를 창설


이 부대의 임무는 북한에 대한 보복차원에서 평양의 주석궁을 습격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31명의 청년을 모아 이들을 이곳 외딴섬 실미도에 격리 수용하면서 3년4개월간의 지옥훈련을 시켰다.


이 부대는 공군 소속이었지만 실제로는 중앙정부에 의해서 창설되었고 관리되었다.


이부대원들의 특수공작 기본계획서에 의하면 사형수로만 구성할 계획이었으나 법적인 문제로 인해 

민간인으로 대체


일반인과 전과자등 다양한 신분을 가진 자들로 차출된 북파공작원들은 피나는 훈련을 통해 인간병기로 거듭났다

훈련과정에서 7명이 죽었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전부

실미도사건이 일어난 배경에는 혹독한 훈련과 열악한 환경  보수등이 원인


북한침투 훈련은 다끝났지만 공작원들은 침투명령은 받지못하고 조그만 섬에서 3년 4개월을 대기하고만 있었다.


그 이유는 국제정세의 변화 때문에 동서 냉전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상황이 반영된 결과

이른바 핑퐁외교


키신저 미 국무장관과 닉슨 미국대통령의 중국방문으로 세계는 급속하게 평화모드가 조성


이러한 정세 속에 북파공작원은 정권에 부담스러운 존재

그래서 정부는 이 공작원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오히려 인간병기인 공작원들에게 

기간병들이살해되고 실미도 사건이 터진것


이들 공작원 24명은 1971년 8월 23일 오전 6시경 기간병 18명을 살해 하고 실미도를 탈출하면서 시작


당시에 동원된 기간병 중에 단 6명만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들의 증언으로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진 영화는 흥행 성공

실미도 사건이 국민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당시의 훈련장에는 공작원들의 최종 폭파목표인 

김일성 주석궁과 축소된 평양의 시기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수도권과 가까워 실미도의 촬영장소를 둘러보고 역사적인

 비극의 현장을 보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실미도를 찾는다.


역사적 유물 거의 사라지고 없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조그만 섬 무인도인 실미도는 그유명한 사건이 아니었으면

 평범한 섬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실미도에 건너가려면 썰물때만 가능

너비 10여 미터의 사구 밖에는 딱딱한 갯벌로 이루어져 자연산 굴 밭이 널려있다.


실미도 해수욕장 반대편에 있었을 훈련장을 찾아서 가다보면 산으로 올라가기 직전에 해골 아래 

뼈다귀를 x자로 그려진 판위로 실미도란 안내판이 있다.

뼈가 하나는 없어져서 누군가 나무 막대기를 꽃아놓았다.


산길을 따라 고개 너머 뒤쪽에는 사방100여 미터의 모래사장과 멋진 바위들이 나타났다.

산쪽으로 올라가면 막사를 지었던 주춧돌들이 나타난다.


이 곳에서 피끊는 젊은이들이 생사를 가르는 가혹한 훈련과 차별 대우로

 비극이 잉태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기묘하게 생긴 바위들과 잔잔한 바다가 훈련병들이 흘렸던 피와땀을 무심하게지켜보았을 것이다

길도 없지만 물이 빠진 해변의 바위를 타고 자갈밭을 지나 다시 처음에 왔던 곳으로 와 보니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실미도 영화 세트장

영화 실미도는 역사적인 사실들을 그대로 보여 주지는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져가고 있던사건을 추적하여 밝혀내어 상업적인 성공 

그런데 안타까운 일은 2억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설치된 실미도 영화세트장을 관할 공무원들이 부수어 버린것

이런 황당한 일은 근시안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무지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담당자들은 이 세트장이 무허가라서 철거했다고 하지만 현지인들은 무허가가 아니라 허가기간만료였다고 말한다.


영화촬영이 끝났으니 허가 기간도 종료됐다고 생각하고 아무런 생각도 없이 

세트장을 철거한 것은 정말 안타까운 조치이제 영화촬영장은 관광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인천시는 뒤늦게 관광마인드가 없다고 부구청장과 담당 공무원 3명에게 징계를 내렸다고 하는데 

너무나도 아쉬은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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